1. 날씨는 추워도...

    날씨는 추워도 날씨는 추워도     승탁이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그림을 그립니다. 실제 그림보다 승탁이가 말하는 그림 해설이 제법입니다. 엊그제 승미처럼 종이아깝게 그리던 녀석이 조금씩 이해할 만한 그림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녀석이 알 수 없는 그림을 그린다고 해도 엄마와 아빠는 끊임없는 종이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날씨가 추워도 아이들과 함께 바닷가에 나갔습니다. 멀뚱멀뚱 바다구경만 하다 녀석들에게 호미 한 개씩을 주었습니다. 역시나, 아이들에겐 체험교육이 최고였습니다. 호미를 가지고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맘껏 그려보고 파헤쳐 보는게 교육입니다. 날씨는 추워도....         * 오광신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4-11-07 20:09)

    by 오광신 2004.02.08 0 Comments
  2. 2월 첫날, 광팔이네 주말 나기

    주말 풍경 주말 풍경 (2004년 2월 1일) 회사일 마치고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선 잠시 뒤에 열심히 뜁니다.  무슨 각오를 한 듯 열심히 뜁니다. 담배를 끊고선 런닝머신을 구입했는데, 담배 끊고서 늘어난 10킬로그램을 빼야 합니다. 아무래도 1주일 중에서 3일을 뛰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빠가 운동을 하고 난 뒤에, 오따따 녀석이 편지를 씁니다. 동화책 " 동생의 입원 "에 나온 이야기를 떠올려서 아까운 (?) 색종이 여러장에 편지를 씁니다. 똑같은 내용이지만 자가 딴엔 대단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승이먀 사랑해...(오빠가) 일요일엔 오랜만에 한산도에 갔습니다. 한 동안 춥더니 오늘 바깥 나들이 하기에 날씨가 참 따뜻했습니다. 아이들은 차를 배에 싣고서 가는게 참으로 신기한지 무척 재밌어 합니다. 그러나 바다를 지나가는게 무서운지 배 안에서도 차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습니다. (남매가 닮았나 보죠) 위 사진은 한산도 도착 장면입니다. 한산도는 한산대첩으로 유명한 이순신 장군의 영정이 모셔진 "제승당"이 있습니다. 배를 타야만 올 수 있는 곳이라서 정말 한산(?)하고 호젖한 것이, 옛날에 승탁이 엄마와 데이트 하던 기분이 잠깐 들었습니다. 아빠는 해군 출신 이라서 "이순신"장군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특히 해군이라서 조선시대 수군이나 지금의 해군이나 자랑스럽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튼튼한 선진국일수록 해군이 제일 크다고 합니다.   제승당 내부     * 오광신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4-11-07 20:09)

    by 오광신 2004.02.01 0 Comments
  3. 혹독한 겨울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기 좋지 않은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기 싫어합니다. 좋지 않은 치부란, 보통 아프고 배고프고 돈없고 가엽고 하는 등등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여하튼 이런 저런 좋지 안은 기억을 최대한 잊고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런 저런 스트레스 때문인지, 아내는 " 어쩌구 저쩌구~ 10억 만들기..." 란 책을 읽고 있습니다.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이런 이유인지, 요즘들어 빈번하게 복권을 사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래도 정말 다행인 것은, 경제문제를 제외한다면  아이들과 아내가 건강하게 지낸다는 것이 복이라고 생각됩니다. 정말 정말 다행인 것입니다. 직접 해결할 수 없는 것이라면 걱정은 해봤자 소용없는 일이라지만, 어머니가 편찮고, 형제가 불편하게 지내기도 하는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나이들면 더 아프기 쉽고, 때론 안 좋은 일도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올해를 힘들게 보내시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여하튼 오늘도 힘을 내 봅니다. 짧든 길든 힘든 시기를 이겨 냅시다. * 오광신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4-11-07 20:09)

    by 오광신 2003.12.26 0 Comments
  4. 결혼한 지 5년이 지나서...

    딱 5년전 12월 6일, 오늘만큼 추울 때에 광팔이가 결혼을 했었습니다. 5주년이 되는 해에 두 녀석은 순서대로 5세 3세가 되었습니다. 결혼 할 때엔 그런 기분으로 평생을 살아갈 수 있겠노라고 생각했었는데, 알게 모르게 퇴색하는 단풍처럼 그리고 이미 떨어지는 낙엽처럼 젊었을 때의 녹색을 되찾을 수 없듯이, 젊은 색깔을 되돌릴 수 없는 나이가 되어 버렸고, 이제 와서는 나이와 별 시덥지 않은 세상 탓만 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세상은 항상 이렇게 변해 왔는데도 마치 자기 시대의 세상이 힘든 것처럼 탓을 해 보지만, 역시 모든 세상은 똑 같은 방향으로 흘러 왔다는 사실을 망각했나 봅니다. 하지만 푸른 새싹은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에 항상 감사하며 기쁜 마음으로 살아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5주년에 비례하는 5세와 3세의 푸른 아이들이 부모의 양분을 먹으며 자라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남자들에게는 항상 비슷한 감정인 것 같습니다. 결혼 첫 1주년 때엔, 별 부담이 없어서 아내에게 금목걸이를 선물했었습니다. 그 다음 해엔, 자그만 옷을 한 벌 사입으라고 했었구... 그 이후 3년 째, 4년 째엔 적당히 살림에 손실이 안가는 한도 내에서 필요한 것 있으면 해 입으라고 대충 했습니다. 그러다가 올해엔 작년보다 살림엔 차이가 없더라고, 비상금을 죄다 털어서 아내(마누라) 화장품 셋트를 사 주었습니다. 때마침 마누라 화장품 뚜껑을 열어보니 공교롭게도 모든 화장품이 다 떨어져 있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화장품을 내 맘대로 사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몇 날 밤을 골방에 쳐박혀서, 인터넷으로 명품 화장품에 대한 장시간의 공부를 한 끝에 나름대로 광팔이에게는 의미있는 선물을 해 주었습니다. (말이 명품 화장품이지 쥐방울 만한 한 병이 10만원에 육박할 정도니 감히...) 광팔이도 역시 세상에 대한 불만이 날로 심해지고 있습니다. 스스로 점잖게 인생 공부를 하지 않으니 입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조용히 살아야 하는데.... * 오광신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4-11-07 20:09)

    by 오광신 2003.12.08 0 Comments
  5. 바쁘고 피곤한 날이 계속되고...

    담배도 끊은 지 시간이 좀 되니깐, 매 시간마다 쉬지 않고 일을 하니 정신적인 피로가 많이 쌓입니다. 휴식시간을 가끔씩 만들지만 예전에 담배 피우던 만큼 휴식시간이 없게되고, 많은 시간을 일에만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요즘 일에 쫓기다 보니 여유를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위엔 저 보다 심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가정생활이 유지될지 괜히 남 걱정 됩니다) 홈페이지는 그냥 구경만 하며 지내고 주말중에 일요일엔 무조건 쉬어야 직성이 풀리는 광팔이가 되었습니다. 조금 지나면 일이 좀 풀일 것이라고 기대하며 힘차게 일하고 있습니다. 건강을 생각하며 일하고 싶지만, 요즘의 X같은 세상은 용납하질 않습니다. 좀 쉬자고 편한 소리를 하면 " 배부른 소리 " 라고 합니다. 이상하죠? 가끔 이런 상상을 합니다. 재산상, 가족상 특별한 재물이 없다면 우리네 월급장이는 평생동안 기계처럼 일을 해야만 생활이 유지되는 굴레를 지고 살아가야 한다고... 그런 굴레가 과연 평등한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도 갖고 있지만 딱히 굴레를 벗을 방법도 없습니다. 평범한 월급장이가 굴레를 벗는 길이 있긴 있습니다. 그것은 ... 그것은 ... 바로 ... 로또복권에 당첨되거나, 맑은 날에 벼락을 맞거나... 등등... 욕심은 무한계이고 꼭 돈이 많아야 굴레를 벗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요즘의 우리 삶은 돈과 너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끊을 수가 없지요~ .... 무슨 소리를 적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중에 다시 읽어보고 잘 모르겠으면 지워버리겠습니다. ㅋㅋ * 오광신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4-11-07 20:09)

    by 오광신 2003.11.08 0 Comments
  6. 종합 건강 검진을 받고서..

    어느덧 한 회사에서 근속년수가 좀 되다보니 종합검강검진 대상이 되어 회사지원으로 마산 삼성병원에서 검진을 받고 왔습니다. 혹시나 젊은 나이에 무슨 문제가 있겠냐만 마음은 좀 불안했습니다만 평상시에 건강에 이상이 없었다면 조심하면서 지내면 그만입니다. 특히나 비만에 문제 없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젊은 사람이든 나이든 사람이든 운동을 해야 합니다. 오래사는 것 보다도 중요한 것은 건강하게 사는 것인데 적절한 운동없이는 어렵게 보입니다. [ 위장 내시경 검사 ] 숱한 사람들이 고통스러웠다는 이야기에, 잔뜩 긴장하여 검사를 받았는데 내 눈으로 그 기다란 전기줄이 내 입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계속 지켜볼 수 없을 정도로 끔직한 광경이었습니다. 왜냐면, 기껏 50cm 정도만 들어가면 되는 줄 알았는데 족히 2m 도 넘게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느낌인지 모르겠지만 지켜볼 수 없었습니다. 검사 결과, 위는 건강한데 식도에 조금 이상이 있으니 약간 조심하라고 합니다. 조심하지 않는 인생이 있을까요? 먹고 싶은것 맘껏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저는 매일 술을 먹는데도 예상보다 아직까지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언제까지라도 건강하진 않을 겁니다. 건강할 때에 챙깁시다... * 오광신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4-11-07 20:09)

    by 오광신 2003.10.23 0 Comments
  7. [re] 종합 건강 검진을 받고서..

    나는 연기했다.. 그리고 오늘 검진하고왔다.. 45인승 버스에 8명이 타고 출발했다..(1시간 이상을 달려야하는데 덜컹거리는 고물 버스였다..) 버스 기사 아저씨는 13시에 출발할 거라는 말을 남기고는 어디론가.. 13시에 차를 못탈 것 같으면 연락하라면서 명함을 한장씩 나눠 주던데..웬 갈비집 명함이었다.. 기사 아저씨의 속셈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자기집 PR하려고..) ㅋㅋㅋ.. 부인과 같이 검진을 온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다음부터는 울와이프도 함께 받아봐야 겠다고 생각했다..(extra cost 250.000) 11시가 되니 끝나버렸다.. 버스 출발하자니 2시간이나 남았고.. 덜컹거리는 고물버스를 타고 갈려고 생각을하니.. 눈앞이 컴컴했다..(사실은 다른 속셈이..) 어느새, 택시를타고 병원을 빠져나오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마산이 내 고향이다) 검진 끝나고 나올 때 받은 식권은 택시 기사한테 줘버렸다.. [위내시경] 나는 위내시경을 하지 않았다.. 첨부터 할 생각도없었고, 할 자신도 없었다.. 진두지휘를 하는 꽤 계급이 높아 보이는 간호사 아줌마가 내 차례가오자 내시경을 하겠냐는 질문대신 "000님은 위장 조영촬영으로 모시겠습니다" 라고 했다.. "모시겠습니다~" 라는 말은 룸싸롱에서 들어보고 처음이었다..(믿거나 말거나) 내 앞 사람들까지는 "내시경하시겠습니까? 위장 조영촬영하시겠습니까?" 라고 물어봐 놓구선.. 아마도 미리 작성해서 제출한 문진표를 보고 아직 그 무시무시한 테러진압용 소형 카메라를 목구멍에 집어넣을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한 모양인가 보다.. (문진표에 소화 잘된다고 체크했었다.) 청력검사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그 옆 내시경실에서 "우윀~ 꽥 꽥" 하는 소리에 속이 울렁거렸다.. "아~ 난.. 내시경 절대 못해~!!" 라는 생각이... [위장조영촬영] 일단 위장을 부풀릴 생각인지 과립형으로된 약을 먹고 입을 다물라고 했다.. 입속에서 부글 부글 끌어오르는데.. 간호사 아줌마가.. "입 꼭 다물고 트럼하지 마세요!!" 라고.. 가스 같은게 배 속으로 퍼지는 느낌이 왔다.. 내장팽창 성공!! 다음 단계.. 겔포스 같은 약을 종이컵 가득히 따라 주면서 원샷 하라고 한다.. 겔포스 보다는 농도가 몇배는 진했다.. 끈적~ 끈적~.. 그 덕택에 배고픔은 사라지고.. 울렁~ 울렁~ 더부룩~ 그거 먹고 침대에 누우니.. 창너머 카메라 보면서 검사하는 의사선생님이.. 약이 고루 퍼지지 않았는지.. (정확히 위벽 구석구석에 뭍힐려고 그러는지..) 좌로 굴러 우로 굴러를 시키는 것이었다..(문득 군대 생각이..) [체지방검사] 체중을 15킬로나 빼라고 한다.. 사약이나 다름없다.. -끝- * 오광신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4-11-07 20:09)

    by 이행철 2003.10.31 0 Comments
  8. [전여옥 칼럼] 국민 투표 - 해서 뭐하나 ?

    조선일보 구독하지만 별로 안좋아 합니다. 하지만 오늘 (10/13월) 조선일보에 실린 전여옥 칼럼이 너무 멋진 글이라서 올립니다. 보시고 동감한다고 생각하시면 박수라도... ============================================================================================== 노무현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밝힌대로 국민에게 ‘기쁨’을 주지 못했다. 지난 8개월 동안 자잘한 말 실수와 굵직한 정책실패를 겪는 동안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하는 것은 한마디로 ‘고통’이었다. 12월 15일 ‘국민투표’를 통해 재신임을 해달라며 대통령직을 내놓을 각오가 되어있다고 했다. 그리고 재신임을 묻는 것은 아무런 조건도 없으며 어떤 의도도 없다고 했다. 바로 이점이 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절망케 한다. 어찌 한나라의 지도자가 ‘대통령의 자리’를 걸고 재신임 카드를 들이밀며 ‘아무런 조건도 어떤 의도도 없다’고 말할수 있는가? 의도없이 국가 최고 위기에나 실시하는 ‘재신임 국민투표’를 수백억억원이란 돈을 들여 해야 하는가 말이다. 돈 뿐 아니라 국정의 혼란과 골이 깊어질 것이 뻔한 경제위기, 북핵문제, 파병문제등 산처럼 쌓인 문제는 내일이 어찌 될줄 모르는 대통령 때문에 골방에 쳐박혀 있을 것이 불보듯 훤한 일이다. 이렇게 시기를 놓치면 그 어떤 결정을 내린다해도 ‘최악의 선택’이 될수 밖에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최도술 수수 사건을 모른다고 할 수 없다’며 ‘도덕성에 손상’을 입은 대통령으로서 일을 할 수 없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대통령의 뜬금없는 기자회견은 ‘비리사실에 대한 연관을 시인’한 고백이나 다름없다. ‘측근의 비리’때문에 긴급한 국가위기 사태에나 쓸 수 있는 재신임 카드를 내미는 것-노무현 대통령 아니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한 네티즌의 말처럼 ‘대통령 자리도 버릴 수 있는 용기’를 지녔고 ‘나는 대통령자리를 걸었으니 당신들은 뭘 걸래?’하고 달려드는 ‘역전의 고수’만이 할수 있는 일이다. 어느새 대한민국 대통령의 자리는 ‘버릴 수 있는 자리’가 되었고 ‘판돈’걸듯 내기거는 용도가 되었다. 또한 ‘대통령노릇 못해먹겠다’는 자잘한 충격요법에 이어 이번에야말로 ‘노무현표 대박’을 터뜨린 셈이다. ‘대통령 노릇 못해먹겠다’고 했을 때 언젠가는 ‘대통령 그만두겠다’는 말도 하리라 생각했지만 ‘임기 8개월’만일 줄은 몰랐다. 더구나 그것이 국민을 압박하면서 ‘내마음대로 안해주면 나 일못하겠다’는 재신임 카드인 줄은 몰랐다. 장관들은 반려받을 것이 뻔한 사표를 냈고 2시간의 완벽한 국정공백이 있었다. 이것은 완벽한 ‘정치적 쇼’이다. ▲ 용산 전자상가에 진열된 TV에서 노무현 대통령 시정발표가 중계되고 있다./ 정경렬 기자 노무현대통령의 지지율이 10%바닥을 쳤다. 대통령으로서 이미 ‘레임덕’현상을 맞은 셈이다. 그런데 이 판국에 재신임을 묻겠다는 것은 적반하장이다. 그러나 여론조사 결과로는 재신임을 하겠다는 국민들이 불신임보다 10%정도 많았다. 그러나 여전히 노무현 대통령의 정책수행에 대해서는 ‘제대로 못하고 있다’가 ‘잘한다’를, 불신임과 재신임의 차이보다 훨씬 높다. 분노할 기력도 잃은 국민의 뜻은 무엇인가?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서 ‘나 가장 대우 안해주면 이혼할래’하는 철부지 남편을 아이들 생각을 해서 ‘잘해보자’고 달래는 아내와 다름없다. 사랑도 없고, 신뢰도 없고 희망도 없다. 다만 아이들이 클 때까지, 북핵부터, 경제까지 이 위기를 넘기는데 판만 깨지말자는 뜻이다.이것이 이 대한민국 국민의 박복한 팔자이다. 이것이 바로 노무현대통령의 ‘의도’이다. 불신임을 받으면 기쁜 마음으로 대통령직을 내놓을 각오가 되있다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재신임카드’의 명백한 의도인 것이다. 폭탄선언은 ‘도덕성의 회복’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고 그 다음날은 ‘야당과 언론때문 이렇게 됐다’고 말을 뒤집었다. 그리고 오늘은 사석에서 귀엣말로 해도 좋은 더없이 촉촉한 언어로 대한민국 국민에게 감성적인 호소를 했다. 그 탁월한 변신과 정치적 승부력과 감정을 일부러라도 걸러내야 할 문제일수록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정치적인 기술은 그 어느 누구도 따라 잡을 수 없이 뛰어나다. 그런데 왜 그렇게 ‘나랏일’은 죽을 쑤었는가? 지난8개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일 없었지 않는가? 본인이 인정한대로 경제는 엉망진창이 되었고 강남집값은 정책을 비웃듯이 폭등했다. ‘참신한 도덕성’만이 유일한 상품가치엿던 측근들은 너나 할 것이 뒷거래된 돈과 칭칭 얽혀버리고 말았다. ‘코드가 맞는 이들’과 ‘개혁을 하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지만 ‘패거리 정치’수준에 머물러 국민들의 불안과 분노는 폭발직전으로 만들지 않았는가 말이다. 대통령직이 어떤 자리인지를 노무현대통령은 몰랐기 때문이다. 또 ‘정치’가 무엇인지도 사실은 몰랐다. 싱가포르 리콴유가 말했듯 정치는 불가능의 예술이다. 잘해보려는데 국회가 밀어주지않고 언론이 흔든다고 ‘재신임카드’를 내미는 것은 대통령이 할 일이 아니다. 정치고 대통령직이고 간에 ‘테크닉’이나 ‘잔재주’로 감당할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12월15일 ‘국민투표’로 재신임을 받아도 노무현대통령은 마음대로 ‘국정’을 요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주방장은 아무나 하는가? 온갖 싱싱한 재료와 활활 타오르는 화덕이 있다해도 주방장실력이 못미치면 말짱 헛것이다. ‘참여정부’의 수장-노무현대통령의 문제는 ‘무기력’ ‘무책임’, ‘무원칙’을 넘어서서 ‘무능력’이다. 대통령의 직분을 다하기에는 능력이 모자라는 것이다. 대통령으로 일하기에는 그간 ‘본 것’도 없고 ‘해본 것’도 없고 그리고 무엇보다 할 뜻도 없는 것이다. 노무현대통령이 태풍이 상륙한다던 날, ‘뮤지컬을 본 심정’을 아는 사람은 알고 있다. 대통령은 만사를 잊고 싶었을 것이다. 태풍은 불어오고 대책을 안서고 다른 일도 계속 꼬이고이 골치아픈 현실을 떠나고 싶었을 것이다. 아이낳느라고 마누라는 목숨거는 동안 어쩔수 없는 무력감에 술퍼마시는 그런 남자들의 심정과 노무현 대통령은 비슷하다. 태풍과 싸우느라 국민들은 비장하게 사투를 벌이는 동안, 달리 대책이 안서니 춤추고 노래하는 뮤지컬을 보며 잠시라도 대통령이라는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것이다. 무능한 사람일수록 문제를 비껴가고 문제해결을 비상식적 방법으로 하는 법이다. 이번 재신임카드는 나라나 국민이 어떻게 되건 간에 자신의 ‘정치적 입지’만을 생각한 철없고 이기적인 도박이다. 역사를 통해 살펴보면 대통령이란 정상적인 임기를 다하지 못하는 경우는 탄핵되거나 쫓겨나거나 살해되는 경우밖에 없다. 목숨걸고 해야 하는 일이다. 또한 국가를 안정시키는 것이 국가지도자로서 최고의 역할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폭탄선언이후 국민안정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말을 했다. 이 나라와 국민을 불안하게 만든 사람은 다른아닌 노무현대통령 본인이다. ‘노무현 대통령’만 조용히 있었으면 그것이 곧 이 나라와 국민의 안정이다. 오늘 국민의 이성이 아니라 국민의 감성에만 호소하는 발언을 대하고 이제 국민은 노무현대통령에 대한 모든 기대를 거둬들였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을 뽑은 국민으로서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때가 왔다. 오히려 대통령으로서 노무현 대통령을 ‘리콜’을 하고 싶은 것은 국민쪽이었다. 그런데 거꾸로 국민을 향해 노무현대통령이 ‘리콜’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리콜’이란 수익자 부담이다. 국민의 피와 같은 세금으로 ‘국민투표’를 하는 수백억원의 돈을 왜 국민이 치뤄야 하는가? 나라 곳간도 바닥났다지 않는가? 노무현 대통령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서 그 비용을 대야 옳다. 국민들은 이제 노무현 대통령에게 요구해야 한다. 언제, 어떻게 ‘재신임’을 묻느냐는 탁상공론으로 ‘국력’과 ‘세금’을 낭비할수 없으니 ‘이제 그만 물러났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재신임운운하지 말고 마지막으로 ‘대통령답게’ 깨끗이 물러나 달라고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말대로 그것이 ‘더큰 정치발전’일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재신임을 묻는 정국이 그래도 지난 8개월동안의 혼란보다 더 하겠냐고 반문했다. 마찬가지로 만의 하나 노무현 대통령이 물러난다 해도 ‘취임이후 8개월’보다는 혼란스럽지 않을 것이다. 또 노무현대통령은 이튿날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고건총리가 국정전반을 이끌어 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달리 할일도 없는 셈이다. 노무현대통령은 모든 일차적인 책임이 ‘대통령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진정으로 국민과 국가를 위한다면 국민이 요구하기 전에 알아서 물러나야 한다. 그래서 농사나 짓는게 좋겠다는 형님의 뜻을 받드는 것이 누구보다도 동생을 잘 아는 형님에 대한 도리요, 국민에 대한 예의이다. 그리고 이제 공은 국민에게 넘어왔다. 고통스럽지만 뒤를 돌아보지 말고 두려움없이 앞으로 나아갈 때다. 국가의 혼란을 걱정하며 ‘어쩔수 없는 재신임’을 할 것이 아니라 적어도 4년후를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앞으로 재신임류의 회심의 카드가 연례행사처럼 되풀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지금이라도 과감히 ‘손절매’를 결정해야될 시기이다.(*) 방송인 전여옥 : 1981년부터 1994년까지 KBS 기자로 일한 방송인. KBS 도쿄 특파원을 거쳐 KBS ‘뉴스 700’ 공동앵커, 라디오 ‘생방송 오늘’과 ‘다큐 법정추적’을 진행했다. 특파원 재직 당시 취재 경험을 책으로 펴냈던 ‘일본은 없다’가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으며, 이후 ‘여성이여 테러리스트가 돼라’ ‘대한민국은 있다’ 등 논쟁적인 저서를 펴냈다. 이화여대 사회학과 졸업. * 오광신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4-11-07 20:09)

    by 오광신 2003.10.13 0 Comments
  9. 화창하고 즐거운 주말에 ...

    by 오광신 2003.10.11 0 Comments
  10. 무릎이 까지고 - 평소 운동합시다

    오랜만에 부서의 수요행사 계발축구를 했습니다. 평소 운동을 하지 않은 탓에 살살 뛰었습니다. 어쩌다가 모 동료가 계발인 저한테 공을 자꾸만 패스하는 바람에 공 따라 다니다가 혼줄이 났습니다. 공 따라 뛰어다니다가 그만 몸 따로 마음 따로 - 몸이 따르지 못해서 모래바닥에 자빠지고 말았습니다. 손바닥과 무릎이 엄청나게 까지고 말았습니다. 선혈이 낭자한 채로 계발 축구를 했지만 집에 돌아온 지금에는 무릎이 아려서 죽겠습니다. 그래도 즐겁습니다. 운동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무릎은 피투성이입니다. * 오광신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4-11-07 20:09)

    by 오광신 2003.10.02 0 Comments
  11. 피곤해도 바람은 쐬어야...

    요즘들어 가을 탓인지 광팔이가 회사생활이 조금 피곤한 모양입니다.갈수록 세상살이가 어렵게 느껴지고, 어렵다고만 생각하니입에서는 주로 욕만 나옵니다. 아이들 엄마가 욕쟁이 아빠라고 합니다." XXX "가 입에서 자주 나옵니다. 내 자신도 방금전에 뱉은 욕이 내입에서 나왔었는지 의심스럽지만이미 뱉어버린 욕이고, 아빠는 욕쟁이, 신경질쟁이가 되어 있습니다.고쳐볼려고 노력하고 싶었는데, 집이라고 편안해서 그런지 잘 안됩니다.욕은 줄일 수 있어도, 세상은 더 좋아지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기에슬퍼서 매일 저녁 혼자서 술을 마시는 지 모릅니다.그래도 반성하는 의미로 글을 조금 써 봅니다. 속죄의 마음을 약간이라도 가져 보려구...피곤한 주말에는 하루 종일 잠을 잤으면 좋겠지만, 일요일 오후 늦게라도아이들과 바람을 쐽니다.거제도는 온통 바닷가이기 때문에 바닷가로 나갑니다.오늘도 오랜만에 호미를 가지고 명사 해수욕장에 조개를 캐러 나갔습니다." 아뿔싸 !!, 세상에나~ "명사 해수욕장 마을이 태풍에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습니다.여기저기 공사중인데 차마 아이들과 조개를 캘 수 없어서되돌아 오고 말았습니다. 아직도 끔찍한 모습들입니다.아무래도 한 달 정도는 바닷가에서 놀지 못할 것 같습니다. (위 사진은 영화 흑수선을 촬영했던 거제도의 한 폐교입니다) * 오광신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4-11-07 20:09)

    by 오광신 2003.09.28 0 Comments
  12. 기억하기 싫은 끔찍한 태풍이 지나가고

    기억하기도 싫은 태풍이 지나갔습니다. 짧은 제 평생에, 이렇게 끔찍한 광경은 처음 보았습니다. 자기 눈으로 보기 전에는 모를지도 모릅니다만 너무도 처참한 광경이라 몇 마디 씁니다. 집엔 며칠째 정전으로 인해 촛불로 밤을 밝히고 있으며 회사에서도 전기가 없어서 업무를 할 수가 없습니다. 가까스로 노트컴퓨터로 연결하여 인터넷을 하고 있습니다. 전기가 너무도 소중한 자원임을 깨닫고 있습니다. 퇴근할 때엔, 15층까지 걸어 올라가야 할 것 같습니다. 거제도에 이렇게 심각한 재난은 처음인데 엇그제 보았던 마산 시내는 더 끔찍했습니다. 그나마 우리 가족이 멀쩡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른 모든 분들도 무사했으면 좋겠습니다. * 오광신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4-11-07 20:09)

    by 오광신 2003.09.15 0 Comments
  13. 국회의원 아저씨, 핵폐기장 막아주세요- 9월5일

    [사회] "국회의원 아저씨, 핵폐기장 막아주세요" [오마이뉴스 2003-09-03 21:12:00] "오늘도 우울한 비가 내리고 있는데 내 마음 같습니다. 부안 군민들은 아무리 비가 와도 우비를 입고 시위에 나섭니다. 우리는 지금 핵폐기장 유치 철회 결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라에서 우리의 원성을 듣는지 의문스럽습니다.아무리 시위를 해도, 나라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애타는 우리 마음을 헤아리지 않아 힘이 듭니다. 변산반도와 위도, 격포 등 아름다운 부안에 핵폐기장 들어서지 않도록 오늘도 기도를 합니다." (김인하. 변산초 4년)열흘 가까이 등교거부에 나선 부안의 학생과 학부모들이 3일 상경해 반핵집회를 가졌다. 학생 250여명과 학부모 100여명이 참석한 이날 집회는 견학을 겸한 것이어서, 별다른 충돌없이 진행됐다. 학생들은 오후 1시30분경 국회를 방문해 조부영 국회 부의장을 만났으며, KBS 견학홀을 둘러본 뒤 짧게 집회를 가졌다.학생들은 교복을 입고 온 학생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반핵 마크가 그려진 노란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직접 만든 피켓에는 '핵은 싫어' '핵=죽음' '아름다운 부안' 등의 구호가 서툴게 그려져 있었다.부안군수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길게 적은 피켓도 있었다. 이들은 집회를 마치면서 "핵없는 세상에서 살고싶어요"라고 외치며, 들고 있던 노란색 풍선을 하늘로 날렸다."대체에너지 개발은 어떻게?" 질문에, "안전한 에너지 연구해야" 원론적 답변 ▲ 조부영 국회부의장이 눈을 감은채 부안에서 온 등교거부 학생 김인하양의 편지낭독을 듣고 있다. ⓒ2003 권박효원 상경 일정 중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조부영 부의장과의 만남. 학생 15명과 학부모 10명이 대표단을 구성해 부의장실을 찾았다. 조 부의장은 학생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자리를 안내했다. 학생 중 한명이 노란색 반핵풍선을 건네자 반갑게 이를 건네받았다.학부모 중 한 명이 "등교거부가 마음아프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큰 갈등이 있었다"고 말을 꺼내며 울먹였다. 그는 "아이들도 다 커서 군수의 비민주성을 알고 엄마 아빠를 도와주려고 한다"며 "도움을 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김인하양 역시 울먹이며 편지를 읽어나갔다. 김양은 "아무리 시위를 해도 나라에서 거들떠보지 않고 애타는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김양은 목이 메인 모습으로 천천히 낭독을 이어나갔다.이어진 학생과의 질의응답에서 조 부의장은 "안전한 에너지를 위해 힘쓰자"는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했다. 조 부의장은 "정균환 의원으로부터 충분히 부안의 실상을 듣고 있다"며 "외국 견학을 하지 못해 핵폐기장의 안전성은 잘 모른다, 대안에너지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 계속 연구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경찰 진압과 구속자 석방에 대해서는 "폭력적인 진압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국회는 당연히 (석방을) 촉구하고 정부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처음 말머리에 "등교거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시각이 있지만, 여러분의 충정을 생각해서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던 조 부의장은 다시 이를 확인하는 학생의 질문에 대해 "어떤 이유에서든 학부모들이 등교거부는 종결지어줬으면 한다"며 자제를 당부했다."안보내는 부모 마음 오죽하겠냐" ▲ KBS 견학홀 앞에서 노란색 반핵 풍선을 날리는 부안 학생들. ⓒ2003 권박효원 이날 서울에서 만난 학생들은 "학교에 가고 싶다, 그러나 핵폐기장 철회가 그만큼 중요하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오죽하면 아이들을 학교에 안 보내겠냐"고 말했다.임옥주(변산초 5년)양은 "오늘 왔는데 핵이 정말 무섭다고 생각했다, 핵 때문에 불쌍한 어른들이 많이 다치고 피가 났다, 우리도 핵 때문에 학교에 못 가고 있다"며 "우리도 같이 싸워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부의장실에서 편지를 읽었던 김인하양은 "마음이 중간"이라고 말했다. "학생이 나가서 공부할 의무가 있는데 다하지 못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그런데 한편으로는 핵폐기장이 자손이 위험해지니까 그것을 막기 위해 시위에 나가는 것은 자랑스럽다"는 것이다.김양의 어머니 최경옥(38)씨는 "등교 거부가 좋은 방법은 아니다, 어떤 부모가 좋다고 하겠냐"면서도 "그런데 이 방법이 효과가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최씨는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하는 아이가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아서 가슴이 아프다"며 "핵폐기장 문제가 빨리 해결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박모(32)씨 역시 "학교에 있어야할 아이들이 시위장에 갈 때 부모된 마음에서 힘들지만 이 일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씨는 "아이들이 스스로 집회에 나가겠다고 나서는 경우도 많다. 어른들만의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4일도 부안학생 상경시위 이어져국회를 나선 학생들은 오후 3시30분경 KBS 견학홀을 방문한 뒤 정리집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학생들은 핵폐기장 반대 내용으로 개사한 동요와 만화 주제가 등을 불렀다.박소라(변산서중 2년)양은 '언론사 계시는 어른들께'라는 편지를 낭독했다. 박양은 편지에서 "고향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폭도로 매도되고, 등교거부에 대해서도 어른들이 우리를 볼모로 잡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는데 울분을 참을 수 없다"며 "조용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언론사 어른들이 도와달라"고 호소했다.이날 학생들은 20장 정도의 편지를 전달하고 부의장실을 나섰다. '핵폐기장백지화 범부안대책위'에 따르면, 이미 등교거부에 동참한 학생들이 편지가 수백통 쌓여있다고 한다. 부안 학생들은 4일 다시 서울에 올라와 청와대에 이 서한들을 전달할 예정이다. 4일에는 800여명이 상경에 동참할 예정이다.3일 현재까지 부안군 전체 46개 학교 가운데 휴업학교가 7개로 늘어났다. 학부모 총회를 거쳐 등교거부를 결의하는 학교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등교거부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대책위 측은 부안예술회관에 '반핵민주학교'를 열어 등교거부 학생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환경운동가와 학부모들이 일일교사로 반핵민주학교에 동참하고 있다./권박효원 기자 (10zzung@ohmynews.com) * 오광신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4-11-07 20:09)

    by 오광신 2003.09.05 0 Comments
  14. ▒ 부안은 저를 일깨워 주었습니다 - 9월 1일 오마이뉴스

    ▒ 부안의 노란 물결 부안을 다녀왔습니다. 작은 소읍에서 매일 같이 수백, 수천명씩 모여 벌이는 촛불시위를 보고 싶었습니다. 저녁 마다 반핵민주광장으로 그 많은 이들을 이끄는 힘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왜 그들의 시위와 주장에 다른 이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은지를 직접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보고 싶은 것, 알고 싶은 것, 확인하고 싶은 것들 모두를 보고, 듣고, 체험하고 왔습니다. 참으로 잘 다녀 왔다는 생각입니다. 부안 읍내는 그야말로 노란 물결이었습니다. 반핵 플래카드, 오가는 차량의 스티커, 깃발, 아스팔트 위의 반핵 구호 스프레이, 길거리를 오가는 이들의 노란색 티 셔츠, 모자. 어린아이들의 얼굴에도 노란 페이스 페인팅의 자국들이 있었습니다. 여자 아이들은 노란 스카프와 치마로 맵시를 내고 있었습니다. 지난 여름 월드컵 때 보았던 붉은 악마 열기를 방불케 했습니다. 검고 무거운 옷을 한 전경 외 부안의 모든 이들이 노란 물결 속에서 살아가는 듯 했습니다. 전경들이 가로 막고 있는 군청을 지나 대책위가 있는 부안 성당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김제에서 왔다는 고등학교 농악패를 만났습니다. 농악대의 옷으로 치장했지만 그들의 마음도 노란색과 거리가 있다고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서울과 전주에서 온 몇몇 예술가들도 만났습니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도 노란 물결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부안 공동체 제가 방문한 그날 35일째 시위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부안 지역 교사들이 만든 문화의 밤이 열리는 날이었습니다. 시위를 거듭해가면서, 반핵민주광장에서 열리는 시위의 내용이 다듬어 졌다고 합니다. 핵과 관련된 대중강연, 영화상영, 토론 중심으로 이어지다가 부안 지역 주민 중심의 문화행사들도 포함되기 시작했답니다. 노란 물결로 서로 하나됨을 느끼게 되면서 시위는 다른 모습을 띠고 흥겨움도 곁들여졌답니다. 이젠 핵 폐기물 문제만 다루진 않는다고 합니다. 그로써 어떤 문제라도 같이 토론하고 맞들 자세들이 갖추어지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시위 35일째는 부안지역 교사들이 당번이 되어 꾸려가고 있었습니다. 교사들의 등장에 앞서 지역의 밴드들이 분위기를 돋구었습니다. 지역의 기타리스트, 밴드 마스터, 가수들이 다 모인 것 같았습니다. 운동가, 유행가, 민요 등이 범벅이 되고, 행사를 기다리던 이들도 누구하나 빠짐없이 그 분위기에 동참하고 있었습니다. 막간의 연주가 끝나자 행사를 담당한 교사들이 무대 위에 올랐습니다. 부안의 학교와 교육을 살리는 길과 핵폐기장 저지 운동이 하나됨을 강조했습니다. 주민들은 ' 그 선생 말 한번 시원하게 잘 한다'며 환호했습니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등교 거부를 가슴 아파 했습니다. 학생들의 수업권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논의하고 있었습니다. 학교 홈페이지에 매일 진도에 맞추어 올릴 학습지도 만들고 있었습니다. 군내 학원연합회에서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었습니다. 학생들도 반핵민주광장에서 부모들과 함께 부안의 사정들을 확인하는 현장 학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교사들은 학교 진도에 맞춘 수업 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수업까지 행하게 되어 학생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교육이 되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교사 노래패가 노래를 부르는 순간 쯤이 절정이었나 봅니다. 저녁 9시 경에 이르자 길을 막아 조성해 놓은 반핵민주광장은 넘실대는 촛불로 가득찼습니다. 성당에서 만났던 김제의 고등학생들은 힘찬 농악과 북 장단으로 모두의 가슴을 시원케 해주었습니다. 몇몇 교사들이 영상클립으로 만든 코믹 애니메이션은 모두를 웃음으로 몰아 넣었습니다. 전주에서 온 교사들의 '우린 할 수 있어요'에 맞춘 군민들의 손동작들은 반핵민주광장을 더욱 멋지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마지막 순서쯤에 부안의 사정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거나 왜곡된 데 대한 토론이 있었습니다. 핵폐기물 처리 당사자인 주식회사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의 광고에 '맛이 갔다'며 부안지역 언론들을 성토했습니다. 서울의 언론들도 한수원의 광고 맛에 부안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며 열을 올렸습니다. 이제 부안을 알리는 일은 부안 군민들이 해낼 수 밖에 없다며 민주적이고도 문화적인 시위를 지속할 것을 다짐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항위를 하기 위해 시위 행렬을 부안지역신문사로 돌렸습니다. ▒ 부안이 준 값진 선물 부안 여행은 최근 어느 여행보다 값졌습니다. 매일 저녁 반핵민주광장에 나오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는다는 할머님의 말씀은 반핵 운동가의 어느 구호보다도 힘이 있었습니다. 노란 천으로 망토를 만들어 입은 소년 소녀들의 모습은 해변가 청춘 남녀의 멋진 몸매보다 훨씬 아름다웠습니다. 학생들을 위해 학습지를 만들고 있는 선생님들의 손은 그 어느 손보다 매력이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을 만나고 이야기 나누었던 것은 그야말로 제겐 행운이었습니다. 이대로 내버려 달라는 것이 그들 요구 전부였습니다. 왜 한 마디 물어보지도 않고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가 항의의 요체였습니다. 주민의 참여없는 결정이 참여정부에 대한 서운함이었습니다. 돈에 넘어간 지역 언론이 자신의 기반인 주민들에 귀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을 더욱 분노케 하고 있었습니다. 한달이 넘는 시위기간 동안 주민들은 만물박사가 되고 있었습니다. 웬만한 전문가가 와서는 핵에 대해 발설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들은 전문가가 다 되어 있었습니다. 지역문화란 것이 왜 필요한지를 역설하는 지점에 이르러선 문화연구로 밥 먹고 산다는 저도 두 손들고 말았습니다. 현 언론이 사회에 끼치는 폐해를 말하는 장면에선 어느 전문가 못지 않은 열정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민주주의 정치를 말하며 올바른 민주주의를 수립하는 행동가가 되고 있었습니다. 고기잡고, 땅파며 고향을 살아가는 그들을 녹록하게 보았던 온갖 공권력이 눈 앞에 환하게 다가 왔습니다. 주민들과 협의하지 않은 채 '구국의 결단'이라며 목청 높이는 얼빠진 지방의 관료들. 그런 내용도 확인하지 않은 채 적절한 보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거라며 현장 확인을 소홀히 하는 중앙의 행정 관료들. 돈으로 모든 것을 무마할 수 있을거라고 자신하는 핵폐기물 관련 종사자들. 그들의 얼굴, 목소리들이 너무도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부안의 주민들이 제게 그 공권력을 떠올리며, 귀기울이게 해주었습니다. 너무도 소중한 선물을 제게 주었습니다. ▒ 저는 부안 군민들을 지지합니다 저는 늘 문화 사회를 꿈꾸어 왔습니다. 자신의 삶을 자신들이 결정할 수 있는 사회, 그 결정이 살가운 소통을 통해서 이뤄지는 사회, 자본의 논리가 한 걸음이라도 멀리 떨어져 있는 사회, 매일 삶이 위험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사회 그런 사회를 문화사회라고 칭하며 그같은 사회 건설을 위해 미력이나마 기여하고자 꿈꾸어 왔습니다. 하지만 부안 여행을 마치면서 그것이 꿈만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외로운 생각이 아니라는 자신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난 해 붉은 악마와 노사모는 저를 가슴 설레게 했습니다. 어느 편을 응원하고, 누구를 지지하는 것을 떠나서 자기 결정, 민주적 소통, 권위에 도전, 즐거운 삶을 도모하고자 했던 그들의 모습은 저를 일깨워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 사회의 새로운 기운을 알리는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그 시작이 어디론가 이어져야 한다는 모색 중에 찾은 부안은 제겐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부안군민은 자신들의 지역을 공동체 정신으로 사랑하며, 지키며, 건설해나가는 빛 나는 고장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그들을 지지합니다. 붉은 악마와 노사모를 지지했던 저는 그들을 지지했던 열 배의 크기로 부안 군민들을 지지합니다. /원용진 기자 (yongjin@sogang.ac.kr) ▒ 덧붙이는 글 기자소개 : 원용진 기자는 <오마이뉴스> 고정칼럼니스트입니다.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이며 문화운동단체인 '문화연대'의 정책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중문화의 패러다임><한국언론민주화의 진단>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2003-09-01 17:09:23   * 오광신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4-11-07 20:09)

    by 오광신 2003.09.02 0 Comments
  15. ▒ 부안-핵폐기장 관련 뉴스 ▒ 8월 23일 일요일 소식

    원전수거물 처리시설 백지화를 요구하는 전북 부안군민들의 집회·시위가 한 달 보름째에 접어들면서 갈수록 격렬해지고 있다. 부안군민들은 8월 중순 이후 도로 점거와 차량 저속운행으로 두 차례 고속도로 차량 통행을 방해한 데 이어 23일에는 전주 도심에서 경찰 수송버스 2대를 불태웠다. ‘핵폐기장백지화 범부안군민대책위’는 40여 전북 종교·사회단체들로 구성된 ‘범도민대책위’와 연대, 시위를 전주로 확산시키고 있다. 또 부안군 내 학교운영위원장 35명은 25일 초·중·고 일제 개학과 함께 고3년과 중3년을 제외한 학생들의 등교를 무기한 거부키로 결의했다. 환경운동연합 전국 사무국·처장단 30여명은 핵폐기장 반대운동을 적극 지원하고 이 운동을 전국에 확산시키기로 결의했다. 부안군민과 전북·종교사회단체 회원 3000여명은 23일 오후 전주시청 광장에서 ‘핵폐기장 백지화를 위한 범도민 결의대회’를 연 뒤, 1.2㎞쯤 떨어진 전북도청 부근으로 진출, 경찰과 충돌했다. 시위대는 전주도심 충경로4거리와 도청 옆 도로에서 폐타이어 50여개를 불태웠고, 이 과정에서 시위대 저지를 위해 도청 옆 도로에 세워둔 경찰버스 2대도 반소시켰다. 이날 시위대와 경찰 충돌과정에서 경찰과 주민 30여명이 찰과상 등 상처를 입었다. 일부 시위대는 취재기자 5명을 폭행하고 카메라를 빼앗아 망가뜨렸으며, 쇠파이프 등으로 인근 상가 유리창들도 깨뜨렸다. 부안군민들이 지난달 9일 이후 시위현장에서 경찰과 충돌하면서 부상한 사람은 경찰 103명을 포함, 200명을 훨씬 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부안군민대책위는 8월 중순 들어 “고속도로와 부안댐, 송전선 점거 등으로 기간산업을 정지시키겠다”고 예고했었다. 부안주민 3000여명은 이 같은 방침에 따라 지난 13일 서해안 고속도로를 점거해 2시간쯤 차량통행을 중단시켰다. 또 17일엔 주민들이 차량 90여대로 서해안 및 호남고속도로 상행선에서 차량 저속운행시위를 벌여 서해안 고속도로 동군산~서평택 구간에서 심한 차량 정체를 빚기도 했다. 인근 상가들도 수난을 겪고 있다. 지난 18일 오후 10시쯤에는 시위대 7~8명이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부안읍 봉덕리 모 식당에 난입, 난동을 부린 뒤 사라졌다. 부안군민대책위는 “경찰의 강경진압이 군민들의 강한 시위를 부추기고 있다”며 “사태를 평화롭고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대화에 나서라”고 주장했다. 경찰은 현재까지 주민 8명을 구속하고 43명을 입건했으며 75명을 즉심에 넘겼다. 또 5명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받는 등 모두 9명을 수배했다. * 오광신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4-11-07 20:09)

    by 오광신 2003.08.17 0 Comments
  16. MP3 플레이어

    by 오광신 2003.08.16 0 Comments
  17. 바쁘게 살아갈 수록 시간이 더 많아집니다.

    광팔이네는 요즘 회사일이 많아져서 무척 바빠졌습니다. 생활의 여유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서 보냅니다. 물론 광팔이보다 더 많이 더 힘들게 일하는 사람도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 나름대로 꿈과 희망, 그리고 큰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단지 사람의 사회적인 위치 때문에 각자 바쁘게 살아갑니다.매일 아침 6시 30분 부터 저녁 8시 넘어까지 회사일 때문에 살아갑니다. 아침식사를 제외한모든 식사를 회사에서 먹고, 회사 버스를 타고 다닙니다. 마치 양계장에 있는 닭처럼,뻐꾸기 시계처럼 매일 반복적으로 살아가고, 집에 돌아오면 얼굴에 기름기가 넘쳐서반질반질 해 집니다. 바빠진 틈을 이용해서 홈페이지를 개정하였습니다. 많이 달라지지 않았지만, 큰 마음을 먹고다른 더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였습니다. 시간이 많이 있었을 때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신기하게도 왜 그럴까요?일이 피곤해도 집에 오면 반기는 녀석들 때문에 그 나마 기운을 차릴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피곤해도 주말에는 늦잠 자지 않고 아이들과 바깥나들이 하려고 작정합니다.부디 장마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오광신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4-11-07 20:09)

    by 오광신 2003.07.11 0 Comments
  18. 일본은 없다? [일본 출장記]

    by 오광신 2003.06.04 0 Comments
  19. 2003년 봄 가족여행, 보성차밭,낙안읍성

    by 오광신 2003.04.27 0 Comments
  20. 또 출장, 광팔이 봄날은 간다

    광팔이 봄 날은 다 갔갔습니다. 제대로 두다리 펼쳐서 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벌써 한 달 째 주말을 쉬지 못하고 출근하여 열씸히(?) 일하고 바쁜 몸은 일에만 몰두하여 시간을 보냅니다. 그런 탓에 주말에도 비싼 시간을 내어 가족들과 함께 무쟈게 비싼(?) 외식도 자주 합니다. 오늘도 식목일 이지만 회사에 출근하여 집에 돌아오지 마자 가족들과 함께, 통영 남망산 공원에서 바람을 쐬고 매우 비싼(?) 외식을 하였습니다. 좀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덴마크에서 시간이 되면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겠습니다. 광팔이의 좋은 소식(?)을 기대하며... * 오광신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4-11-07 20:09)

    by 오광신 2003.04.05 0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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